나무의 기록/언젠가 나무가 될 너에게

태풍을 대하는 "나무의 태도"

나무 슮 2023. 8. 1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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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매년 온다.
그러나 결국, 반드시 지나간다.

 


 

여름, 식물에게 성장에 필요한 햇빛과 비를 내려주는 날이기도 하지만, 무시무시한 태풍이 오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 태풍으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삶의 터를 잃기도 했다.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는 슬픔을 남겼다. 

 

태풍이 온다는 정보를 알고 준비를 해도 태풍의 피해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사람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나무는 대비조차 할 수 없다. 나무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돌아오는 태풍을 견뎌내는 나무들을 보면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무도 태풍의 피해가 아예 없지는 않다. 뿌리째 뽑혀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굵고 넓은 가지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나무들은 이 태풍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버텨낸다. 

 

 

우리의 삶에도 태풍이 오는 것 같은 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나의 어떠함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천재지변 같은 재난 같은 그런 때. 그저 부러지지 않게, 뽑히지 않게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지나가기만을 바라야 하는 그런 때. 

 

 

 

 

나에게도 그런 태풍의 시간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가족이 아픔이 나에게 그랬다. 

 

막내동생이 갑자기 아프던 그날. 내가 잘못들은 줄 알았다. 이라니. 한참 젊고 아름다울 때인 20대에 발생할 수 있는 병이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 없었는데, 결혼도 하지 않은 아이에게 난소에 생긴 암은 절망적이었다. 본인이 훨씬, 많이 힘들었겠지만,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가족의 마음 역시 쉽지 않았다. 가족이 걱정하지 않게 그 혹독하다는 항암치료를 씩씩하게 해내면서도, 혼자서 몰래 울던 막내동생.

 

내가 지방에 있는 탓에 제대로 옆에 있어주지도 못했다. 어떤 상태인지, 어떤 마음인지 알아줄 수 없어 너무 미안하고, 언니인데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래서 더 힘들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길고 긴 태풍은 지나갔다.

"완치".

두 글자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무엇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진 단어였다. 

 

 

그러나, 기뻐하기도 잠시. 1년 뒤 새로운 태풍은 둘째 동생에게 찾아왔다. 둘째 동생은 갑자기 한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이유도 없이. 벼락 맞을 확률이라던 그 일이 하필이면 내 동생에게 일어났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절망은,  어여쁜 두 동생이 겪은 천재지변은, 그 크기가 어느 정도 일지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 동생은 지금까지 회복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아픔과 공존을 선택한 둘째 동생이 그 단단함으로 이번 태풍을 소멸시켰다. 

 

 


 

우리의 인생에 아주 큰 태풍이 찾아오기도, 자잘한 태풍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번의 두 큰 태풍 외에도 갑작스럽게 발생해 나를 수도 없이 흔드는 태풍들이 있다. 매년 지치지 않고 돌아오는 태풍에 많이 지치기도 하고, 그 큰 태풍을 지나쳤음에도 더 작은 태풍에 무너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매년 찾아오는 태풍을 견디고 난 나무는 그다음에 찾아오는 자잘한 풍량 정도는 쉽게 이겨내게 된다. 8월. 길고 긴 장마를 버텨내고, 살을 태우는 뜨거운 태양과도 싸우며, 폭풍우가 되어 찾아오는 태풍까지 견디고 나면, 남은 건 그동안 잠시 멈춰준 생장을 시작하고 결실을 맺는 때가 온다.

 

그렇게 곧, 가을이 온다. 

 

우리의 삶을 잠시 멈추게 하는 그 태풍은, 결국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태풍을 이겨낸 만큼 조금 더 쉬워진 삶은, 우리에게 성장과 결실을 가져다줄 성숙한 가을이 되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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